▶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논란
▶ 주한미군, 탈냉전 후 대북 억제서
▶ 중국 견제·봉쇄로 무게중심 이동
▶ 미 일방적 역할 조정 가능성 우려
미 “본토 방어·中 대만 점령 저지”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 전환 땐
중과 물리적 충돌 가능성 높아져
미 ‘주한미군 축소·철수’ 거론은
전략적 유연성 확보 위한 지렛대
분담금 증액 요구는 비상식적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9,000억 원)로 올려야 한다고 공개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 정부가 올해 지출하는 분담금(1조4,028억 원)의 10배 가까운 터무니없는 금액인 데다 이미 2026~2030년 분담금 규모를 확정한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분담금만 놓고 보면 트럼프 주변 인사들의 주한미군 축소·철수 주장을 감안하더라도 ‘관세폭탄’을 무기 삼아 동맹·우호국을 위협하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의 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와 맞닿아 있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주한미군의 기능과 역할을 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조정할 가능성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 조야에서는 해외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었다. 주한미군이 역내 급변사태에 투입되는 ‘신속기동군’으로 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대중 포위 전략을 감안할 때 주한미군을 고리로 한국을 사실상 ‘대중국 전초기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갖는다. 이 경우 한반도 위기지수는 언제든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
▲ “한국은 日ㆍ中 사이 고정된 항모”대체로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사뭇 다르다. 미국은 탈냉전을 계기로 해외 주둔 미군의 역할을 조정해왔다. 특히 2000년대 들어 해외 주둔 미군이 주둔국과의 공동방위에 그치지 않고 전략적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드나들며 군사적 역할을 수행하는 ‘전략적 유연성’ 확보에 주력했다. 당연히 주한미군도 포함됐다. 노무현 정부가 시작한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평택기지로의 미군부대 재배치는 그 일환이었다.
게다가 남북의 국력 격차는 50배 이상으로 커졌고, 비정부기구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발표한 ‘2025년 군사력 지수’에서도 각각 5위, 34위로 평가됐다. 객관적인 데이터로 판단하면 대북 억제에 주한미군의 기여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주한미군의 역할에서 대북 억제는 이미 부차적인 것이 됐고, 무게중심이 중국 견제와 봉쇄로 옮아갔다는 의미다. 다만 북한의 핵 위협은 주한미군이 아니라 미국 중앙정부의 전략과 방침을 확인해야 하는 다른 차원의 문하제다.
한미 양국은 2006년 1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은 그 필요성을 존중하고 “미국은 한국의 입장, 즉 ‘그것’이 한국민의 의지에 반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존중한다”는 게 골자다. 당시 노무현 정부 내 ‘자주파’와 ‘동맹파’ 간 논쟁이 치열했던 만큼 한미 양국의 협의도 지난했다. 당시 외교부는 ‘그것=한국’이라며 “한국의 동의 없이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자동 개입되지 않도록 한국 정부의 입장을 명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한국’에 한국군과 함께 주한미군이 포함되는지는 지금까지도 논란이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그간의 논쟁과 논란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신중하게 추진해온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 체제 운용을 공식화한 것이다. 물론 한국의 입장은 후순위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5월 주한미군이 대북 억제력과 함께 “동해에서 러시아를 억제하고 서해에서 중국을 억제할 잠재력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대북 억제에 그치지 않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특히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과 같다”고 말했다. 일개 주둔군 장성이 동맹국을 군사 자산에 비유해 노골적으로 ‘한국=대중국 전초기지’라고 주장함으로써 19년 전 한미 양국의 ‘공식’ 합의마저 뭉갠 것이다.
▲ 연이은 “주한미군 축소ㆍ철수” 압박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월 기밀로 분류한 ‘임시 국가 방어전략 지침’을 펜타곤에 회람시켰다. 그는 중국의 대만 점령 저지와 미국 본토 방어를 최우선 전략으로 전환했다. 또 이 과정에서 유럽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 일정 수준의 군사적 위험을 감수하는 ‘전략적 조정’도 언급했다. 미국 본토와 대만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지역의 미군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가령 대만해협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이동시키고, 미중 충돌의 수위에 따라 유럽·중동 주둔 병력의 이동도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다.
헤그세스 장관의 수석고문을 지낸 댄 콜드웰은 싱크탱크 ‘국방우선순위’의 제니퍼 캐버노 선임연구원과 함께 발간한 보고서에서 현재 2만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중 지상 전투병력 대부분과 2개 전투비행대대 등을 철수하고 약 1만 명만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캐버노는 “4년 내에 주한미군 철수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주한미군 감축을 주장하는 이유로 역내 전쟁 발발 시 한국 내 미군 전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미국이 대만해협 등에서 중국과 충돌할 경우 한국이 주한미군의 개입을 반대할 것으로 본 것이다.
사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축소나 철수를 거론하는 건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지렛대의 성격이 강하다.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둔 병력을 줄이거나 아예 철수시키겠다는 으름장인 셈인데, 한국 내부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이번에도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 사회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와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맹목적인 두려움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트럼프 측이 지극히 당연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당근’으로 여기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최근 보고서는 이 같은 한국 사회의 기류가 어떻게 읽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보고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에 그치지 않고 대만 유사시 한국군의 개입까지 정당화했다. 특히 대중국 전초기지화 방안으로 미국 본토 주둔 병력 일부와 일본 오키나와에서 철수하는 해병대의 한국 추가 주둔을 조언했고, 관련 비용은 한국이 기꺼이 부담할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한국은 (중국과) 가까운 곳에 활용 가능한 공간을 갖고 있는 제1도련선의 이상적인 ‘닻’”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오키나와~대만~필리핀~말라카해협을 잇는 제1도련선은 중국의 해상 안보라인으로 미국 입장에선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해야 할 경계선이다.
▲ 위험 내몰며 분담금 증액까지 요구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을 포함한 해외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에 적극적이다. ‘주둔국의 자체 방위력 제고→해당국 주둔 미군의 신속기동군화→대중국 견제·압박 강화’ 등의 전 과정은 성격이 다소 다르지만 하나같이 ‘돈’과 연계돼 있다. 전체적으로는 미국의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다. 미군 주둔국이 자체 방위력을 높이려면 미국 군수산업의 고객이 돼야 한다. 주둔국 입장에선 자국 방위보다 역내 분쟁 개입에 치중하는 미군의 가치와 효용이 낮아지겠지만, 트럼프가 한 손에 관세폭탄을 들고서 되레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면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해외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결국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특성상 한국은 자칫 심각한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 전환은 중국과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졌거나 높아질 가능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다소간의 영향을 받는 데 그쳤던 양안 갈등과 남·동중국해 분쟁 등이 ‘한반도 리스크’를 고조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면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심대한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대중국 전초기지가 된다면 중국의 군사 공격 대상에 포함돼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 한국·일본·필리핀 등 동아시아 동맹국을 하나의 군사체계로 묶기 시작했고, 트럼프 행정부도 동맹국의 일체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실상 동맹국들을 대중국 전초기지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국방·안보전략에는 유리하지만, 한국에는 손실의 측면이 훨씬 더 크다. 이재명 정부가 대만 유사시 불개입 원칙을 공식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이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보를 추진하면서 기존 합의를 무시한 채 분담금 대폭 증액을 요구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한국이 미군기지를 무상으로 임대해주고 분담금을 지출하는 건 주한미군의 한국 방어 역할 때문이지만, 주한미군은 이미 대북 억제보다 자국의 글로벌 전략인 중국 견제에 치중한다는 평가가 많다. 엄밀히 따지면 주둔비를 받아야 할 상황인 셈이다.
<
양정대 선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